쉬어가는 페이지
네팔에서의 첫 아침을 맞아 . 과일가게를 찾아 나오는 길에
어느 이름모르는 사원의 마당에서.
아침에 푸자를 올리시는 할머니.

첫 기억과 첫 사진이 이렇게 고요하고 포근하고 아담해서
이 여행에 대한 기억을 대표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타히티 쪼크, 왼쪽은 Jyatha 거리로 향한다.
길 가던 중 저 문을 통해 보이는 공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할려는 찰나의 골목과 대조적으로 고요하기만 했던 신전에서,
 알 수없는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기분을 느꼈달까.

카투만두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기내식.
닭고기 요리였는데, 여행 중에서 이렇게 푸짐한 고기는 처음이라 감동먹었다. T^T
떠나기 전 배터지도록 먹었는데, 기내식도 마구 쑤셔넣듯 해치웠다.
난 기내식이 왜이리 기다려지고 설레이는지.
납작한 난같은 빵은 설익은 밀가룩 반죽같고 샐러드의 야채는 흐늘했지만,
양갱같은 푸딩과 닭요리는 정말이지 맛.있.었다. 빵도.
아, 기내식, 기내식.



비도 오고 기분이 차분해서 좋기는 하지만, 뭔가 명랑한 생각이 죽는 기분이다.
매일 명랑한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 흐음.
구정 지나기 전에 다짐을 골라내어 정리해야 할 텐데, 뭘 메인으로 잡고 뭘 버러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by 페르소나 | 2010/02/10 17:50 | 여행-nepal | 트랙백 | 덧글(0)
기억 하나
포카라의 호수 옆 식당에서.

시꺼머면 그리기 편하다.

옛날 서양화를 보면 대체로 인물색은 노란 빛깔에 배경은 검다.
그건 아마도 좁은 창문으로 인한 어둠과 촛불이라는 광원 때문이 아닐까.
현대로 넘어오면서 배경을 시커멓게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아무래도 창문도 크고 많아 방은 항상 밝으니까, 조명이 형광등으로 바뀌고, 구석구석이 밝으니까?
인물화의 배경의 색은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 검은 배경으로 깔아버리면 인물 색상을 다양하게 주는 것보다 톤을 낮추고 좀 덜 적은 수의 색이 들어가야할 것 같다.
마치 분명히 색이 들어있음에도 무채색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지 않을까.

네이버의 인물 코너에서. 인권법에 관련된 인물.
네이버의 이 코너에서 보면 대체로 인물 이미지가 인상적인다.
네이버에서 직접 찍었을리는 없을 테고 어디에서 사진을 가져온 것일 텐데, 하나같이 같은 느낌의, 인물의 인상이 눈에 띄는 사진을 잘도 고른다.


수많은 기억들 중에, 어쩌다 떠오르는 기억이있다.
왜 그 기억이 떠오르는지 의아하기는 하지만, 떠오르는 기억들은 대부분 숨은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런 이야기가 후에 가서야 그 상황이 왜 그런지 깨닫는 것이다.
좋은 기억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지만 나쁜 기억에 좌절스럽기도 하다.
국민학교 2학년 때, 교실뒤에 어항이 있었다.
오후 늦게 선생님이 여자아이들 몇몇에게 어항청소를 시키며 담당을 맡게 했다.
수돗가로 가면서 모래씻기 담당인 난, 다른 것이 하고 싶어서 다른 애들에게 바꾸자고 해보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냥 모래를 씻다가 수도 건너편의 유리 어항을 씻던 아이가 나에게 바꾸자고 했다.
나는 좋아서 그래~라고 바로 건너가 어항을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을 바꿔준 그 아이가 '너 어항 깼어' 라고 말하는 것이 었다.
도대체 어디에 깨졌는지 보이지 않아, '어디어디?'라며 찾아보았는데, 그 아이가 깨진 위치를 알려주었다.
한 5cm인가 3cm인가 조그마한 금이 가있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XX가 어항을 깼어'라고 교실로 돌아가는 내내 이야기 했고, 다음날 약간 걱정스레 아침 교실에 들어가니, 그 아이들 가운데 계신 선생님이 'XX야, 네가 어항 깼니?'라며 물어보았다.
난 당연히 내가 씻던 중 발견한 거라 '네' 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으로부터 비난도 벌도 없었지만, 내가 깼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But,
아마, 그 죄책감때문에 아직도 기억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에서야 그 기억을 해석하게 된다.
바로 앞에 있는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던 그 금이, 그 아이는 수도 건너편에서 게다가 그 시점의 각도에서 보기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발견했을까. 왜 갑자기 담당을 바꾸자고 했을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른 아이들과의 귓속말? 눈치 같은 건?
그 아이가 깨지 않고 그저 발견했을 수도 있고, 내가 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어디 부딪히지도, 어떤 깨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기억은 자기 중심적이니까. 간혹 자기 방어적으로 기억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뭐든지 타산지석. 내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엄청 실망스럽다는 기분이 든다.

나이가 들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본성에 대해 받아들여야 하는, 이제는 '어른'이다.
(아, 어른이고 싶지 않다.)
당연시 여겨야 하는지, 내 자신도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자신이 살기 위해?
어른이라는 존재는 순수해지려 하면 바보라는 공식.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것 만큼 나쁜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아직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30rock을 줄곧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굉장히 세속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그리고 답을 주는 것 같다. 배타적이지 않게, 코믹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좋지 않은 기억을 심도있게 바라본다거나, 내 자신이 무슨 결벽증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마치 종교처럼, 극도로 깨끗함을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병들기도 쉽다. 너무 깨끗하게 자란 아이는 면역력이 없어 어른이 되면 아프기 쉬운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지?
음, 어떻게 현실에서 응용을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성인(聖人)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주위사람에게도 좋지 않다.
사회에서는.
by 페르소나 | 2010/02/09 21:42 | 일상-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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